친일의 대열에 합류한, 뻔뻔한 명성황후의 척족들
1. 명성황후로 인하여, 출세를 했음에도 친일의 대열에 참여한 “여흥민씨”들
“인현왕후 민씨”의 아버지였던 민유중의 후손들인 여흥민씨 일족은, 가깝든, 멀든 모두 명성황후의 친족들을 말한다. “친일반민족 행위진상규명 위원회”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 조사하여 공식 발표한, 일제 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1,006명중에, 여흥 민씨출신의 반민족 행위자는 총 23명으로, 성씨중에서는 11번째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자신들 출세의 발판이었고, 또 친족이었던, 명성황후를 살해했음에도, 일본의 앞잡이가 된 것이다.
2. 명성황후 민씨의 척족으로 친일인사가 된 인간군상
1) 민건식 (1879~1944)
대한제국 탁지부 대신 출신의 민영기 의 아들이었다. 1910년 이후 남작작위과와 함께,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고, 그 아버지 민영기도 중추원 고문이 되어 부자가함께, 친일을 했다. 또 친일 유림 단체, “조선유교회”의 구성원이었다. 閔原健植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했다.
2) 민대식 (1882~?)
역시 유명한 친일파인 민영휘(휘문의숙을 만든자)의 장남으로, 아버지 민영휘의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은행업에 뛰어든 후 조선 실업계의 거물이 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 발간한 책자를 보면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으며, 조선토지개량주식회사, 조선신탁회사 등에서 감사역과, 경기도 도평의회 평의회원을 거쳤다.
또 사회 여러 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아버지 민영휘의 재산을 많이 받았으면서, 정작 아버지의 장례를 너무 초라하게 치루어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굳이 친일파 아버지 장례를 할 필요나 있겠냐만). 광복 후, 반민특위에 조사받았으나, 말도 안되게,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한국동란 중 실종돠었다,
민영위의 손자이자 민경식의 아들이다. 이완용의 사돈이자 절친한 친구로(얼씨구) 경술국적의 한 사람이다. 친러파였던 이완용과 함께 활동하다가, 함께 친일파로 갈아탔고 명성황후가 죽은 후에도 요직을 맡았다. 구리고 그렇게 친했던(아부했던) 이토 히로부미가 죽자 조문을 갔으며, 그 후에 결국 나라를 팔아먹었다.
그 공로로 자작이 되었고 막판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자리까지 올랐으며, 아내 심경섭과 함께 친일 단체 애국금체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다가 1940년 죽는다.
그의 아들이 대법원장을 역임하다가 2007년 사망한 민복기다. 그의 후손들은 재산이 국가에 몰수당하자 다른 친일파 후손들처럼 당당하게 국가에, 그에대한 취소처분 소송을 낸 상태다.
4) 민상호 (1870~1933)
민치억의 친자이자, 민치덕의 양자로 원래 궁내부에서 근무하다가 외교관이 되었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남작 자리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의관이 되었다.
그의 후손도, 일제에게서 받은 토지를 2007년 국가에 반환하라는 당연한 처분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에 불복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5) 민영규 (1846~1922)
민경호의 아들로 태어나 판서와 궁내부 대신을 지냈다. 경실국치 후에는, 일제로부터 자작을 받고 그의 작위는 1924년에 그의 손자 민병삼이 습작한다.
1960년 보도에 따르면 민병삼과 그 일가는 일제 강점기 동안, 서울 종로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손자 중 하나는 군 복무 중 사망했다고 한다.
6) 민영기 (1858~1927)
민준호의 아들로, 군부대신에 임명되어 서재필의 독립협회에 대항하는 황국협회를 결성하여 독립협회의 해산에 기여했다. 1905년 을사조약 당시 탁지부 대신으로 한규설과 함께 대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했지만, 결국 1908년에 변절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총재와 이왕직 장관에 임명되고 남작이 되었다.
또 1916년 세워진 대정실업친목회가, 1921년 친일 단체로 변모될 때 회장을 맡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다. 1923년에는 다시 이왕직 장관이 되었다.
그의 아들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민건식이다. 부자가 친일파였던 셈이다.
7) 민영린 (1873~1932)
민술호의 친자이지만 민태호에게 입양되었다. 그래서 “순명효황후 민씨”와 남매지간이다. 1910년 10월 16일 일제로부터 백작 작위를 받았지만, 1919년 아편을 피다가 걸려서 작위를 박탈 당한다(가지가지 한다)
8) 민영소 (1852~1917)
민철호의 아들이지만 민규호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민씨 일족이라 빠른 승진을 거듭했는데 호조판서, 병조판서를 거쳤다. 그러나 임오군란 때 목숨은 건졌지만 집이 불탔고 1894년에는 다시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홍종우로 하여금 김옥균을 암살하도록 했다. 1904년 농상공부 대신에 오를때까지, 요직을 거쳤고, 한일합방 뒤에, 일제로부터 자작을 받고 매국 공채 5만원도 받는다.
9) 민영욱 (1900~1963)
민상호의 아들로 아버지의 자작 작위를 습작했다.
10) 민영휘 (1852~1935)
명성황후의 친척 조카로 민두호의 아들이었다. 1877년 병과 급제 이후로 계속 승진과 요직을 거쳤다. 민씨 일족의 대표 거두라서 임오군란 때 집이 완전히 불타기도 했다.
민씨 일족의 중심인물이자, 수구파의 거두로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친일 개화 세력을 몰아내고 위안스카이와 결탁해서 사대당에 들어가 전권을 휘둘렀다.
그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여 진압하고 갑오경장 때 민씨 일족과 실각하여 유배되었지만 평양으로 도망가 청나라로 돌아갔다.
1895년에 이준용과 교환되어 귀국하고, 1905년에는 휘문의숙을 세웠는데, 이게 그의 친일파 이미지 세탁에 한몫하고 있다. 1910년에는 자작 작위와 은사금, 매국 공채 5만원을 받았다. 민영휘는 경제에 밝아 합방뒤에도, 갑부가 됐는데, 탐관오리로 있을 때 수탈한 재물을 잘 불려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 최고 갑부 중의 한 명이 되었는데 권력형 부정축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이섬의 소유자들도 현재 그의 후손들이다.
2007년 그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로 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반발했고, 결국 환수 불가로 결정됐다.
11) 민형식 (1875~1947)
민영휘의 양자로 한 때는, 을사오적 암살 거사에 거액의 자금을 대기도 했지만 변절한 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아버지 민영휘에 1936년 사망하자 자작을 물려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달리 어려운 사람 돕기를 좋아하고 의리를 숭상했으며 신민회 회원으로 민족 운동에 기부금을 내는 양면적인 모습도 있었다.
12) 민형식 (1859~1931)
민영휘의 아들 민형식과 동명이인이다. 명성황후의 친족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호종한 공으로 병조참판과 형조참판을 지내고 병조의 요직과 삼도수군통제사 등 국방 분야의 요직을 모두 거친 거족이었다. 하지만 일제에게 협조하여 남작 작위를 받았다. 민형식에게는 아들 6명이 있었지만 모두 아편 중독자가 아니면 전과범이라 습작하지 못했다.
13) 민종묵 (1835~1916)
대제학이었던, 민승세의 아들이지만 민명세의 양자가 되었다. 1874년부터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 이조참판, 대사헌 등으로 중용되고 갑신정변 이후에는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겸했다. 1905년 을사조약 때는 조약 체결에 찬성한 대신들을 처벌한 것을 상주했지만, 합방 뒤에는 정작 일제에게 남작 작위를 받았고, 2만 5천원의 은사 공채를 받았다. 1911년에는 매일신보에 한일 병합 1주년 축하문을 싣기도 하고 1912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4) 민철훈 (1856~1925)
민종묵의 장남으로 궁내부에서 일했고 아버지 민종묵이 죽자 1916년 남작 작위를 세습했다. 1920년에는 친일파 윤덕영 등이 세운 해동운행 설립위원장을 맡았다.
3. 민씨척족 중 독립 운동에 투신한 인물들
민씨들이 친일한 사람도 있었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한 사람도 있었다.
특히 을사늑약 체결 후 2천만 동포에 고하는 글을 남기고 자결한 민영환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의병대장 민종식, 의병대장 민긍호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아래는 민씨 독립유공자 주요 명단이다.
민영환 (1861-1905) : 을사늑약 후 2천만 동포에 고하는 글을 남기고 자결.
민종식 (1861-1917) : 의병 (일본헌병이 주둔하고 있는 홍주를 습격 점령하였다, 사형언도)
민긍호 (1865-1908) : 의병 (원주 주재 일본경찰분관소를 습격하는등 활약, 원주에서 전투 중 순국)
민강 (1883-1931) : 독립운동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면서 독립운동 등을 하였고 옥중에서 옥사)
민양기 (1899-1933) : 독립운동 (은율경찰서를 습격 친일군수 최병혁을 죽였고 체포 되어 사형)
민영구 (1909-?) : 광복군 (대한민국임시정부독립운동요원으로 항일 선전 광복군)
민용호 (1869-1922) : 의병 (강릉 관동동구군도창의소 의병 대장)
민필호 (1901-1963) : 임시정부 활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화대표부단장등 독립 운동)
민효식 (1854-1910) : 의병 (황해도 지역 의병장)
민가현 (?-1908) : 의병 (황해도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과 교전 끝에 전사순국)
민동식 (?-1896) : 의병 (강원도 의병으로 삼보전투 인제전투 등에서 활약 했으며 교전 중 순국)
민백형 (?-1907) : 의병 (황해도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펼치다 평산군에서 토벌대와 교전 중 순국)
민병길 (1884-1942) : 임시정부 활동
민병숙 (1873-1919) : 의병 (강원도 홍천군에서 일본 헌병과 격투가 벌어지던 중 순국)
민병태 (1870-1919) : 의병 (홍천에서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순국)
민수현 (?-1910) : 의병 (황해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 일본군에게 피살 순국)
민영수 (1921-2011) : 광복군 (총사령부에 입대 후 광복군 대위로 항일운동)
민영완 (1911-1976) : 임시정부 활동
민영학 (1916-1945) : 독립 운동 (일본군인 5명 일본군속 등 12명 사살)
민용운 (1876-1929) : 독립 운동 (징역 7년 받음)
민제호 (1890-1932) : 임시정부 활동
민찬호 (1877-1954) : 독립 운동
민찬호 (1903-1950) : 독립 운동 (투옥)
민태규 (1882-1968) : 독립 운동 (징역 1년 받음)
민철훈 (?-1896) : 의병 (순국)
민충기 (1888-1932) : 임시 정부 활동 (징역 5년 받음)
민창식 (1899-1938) : 독립 운동 (징역 3년 받음)
민치도 (1868-1921) : 의병 합방 후에도 독립 운동 (징역 7년 선고 받았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후 출옥 다음날 국민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결)
민치영 (1892-미상) : 독립 운동 (징역 10년 받음)
민한식 (1876-1915) : 의병 (징역 10년 받음)
민기수 (1884-미상) : 독립 운동 (징역 1년 6월 받음)
민순철 (1895-1954) : 독립 운동 (징역 3년형 받음)
민창식 (1888-1948) : 독립 운동 (징역 6월 받음)
민순호 (1880-1966) : 의병 (1896년 이강년을 따라 의병 활동하였고, 1905 1907년 의병활동. 특히 1907년에는 적 500여명을 도륙)
민시식 (1878-1947) : 의병
민주호 (1887-1942) : 독립 운동 (징역 1년 받음)
민영갑 (1888-1965) : 독립 운동 (징역 1년 받음)
민영달 (1859-1924) : 독립 운동
민영면 (1886-미상) : 독립 운동 (징역 1년 6월후 또 징역 2년 받음)
민영팔 (1874-1926) : 의병
민영흥 (1911-1983) : 독립 운동 (금고 6월형 받음)
민옥금 (1905-1988) : 독립 운동 (징역 1년 받음)
민원명 (1876-?) : 독립 운동 (징역 2년 받음)
민재봉 (1890-1940) : 독립 운동 (징역 1년 6월 받음)
민주혁 (1870-?) : 독립 운동 (징역 1년 6월 받음)
민춘기 (1922-2018) : 독립 운동 (징역 3년 받음)
민치방 (1873-1925) : 독립 운동 (일본군인이 총검으로 찔러 평생 팔을 쓰지 못하고 여생을 보냄)
민홍식 (1881-1951) : 독립 운동 (징역 3년 받음)
민동호 (1874-1938) : 의병
민병두 (1885-1960) : 독립 운동
민영식 (1899-1980) : 독립 운동
민성호 (1836-1908) : 의병
민영명 (1909-1960) : 독립 운동
민인호 (1854-1925) : 의병
민영로 (1919-1950) : 독립 운동
민록식 (1897-1962) : 독립 운동
민영숙 (1920-1989) : 광복군
민재학 (1896-1922) : 독립 운동
민충식 (1890-1978) : 임시정부 활동
민제식 (1868-1924) : 독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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