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80년 5월에 입대하였습니다.
광주 오치동 31사 신교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았었습니다.
내무반에 입소한 그다음날 중대장님이 오셔서 각소대를 돌며
훈병 한사람한사람마다 군화사이즈 맞냐고 물어보며 안맞다고하면
그자리에서 맞는사이즈 가지고오라해서 바꿔신겨주었습니다.
그때 중대훈병이 몇명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날 하루종일 각소대 내무반을 돌면서
불편한거 없냐고 물어보시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분이 육사출신이었는데 중대훈시하는 모습을 보면
딱 고교시절 교장선생님이 생각날정도로 참으로 지루할정도로 좋은말씀만 하셨습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쯤 70대가 되었겠네요.
교관중에 준위 한분이 계셨는데 생긴모습이
지금 해병수사단장 박대령 닮았었는데 키는 좀 작았습니다
이분이 월남전 참전용사였는데 조교들이 훈병한테는 쌍욕, 폭력은 절대행사못하도록 하였는데
중대장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이하 중사교관들도 정말로 좋으신분들이었고
훈련중에 잘못하면 열외로 빠져서 얼차려받았을까
일석점호 끝나고는 뭔일이 있던간에 점호후 일로 얼차려는 없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마지막주에 군장꾸리는거 교육받고 딱하루 행군하였는데 20대초반이라 힘든줄은 몰랐는데요.
정말 힘들었던건 M1개런드 총구를 거꾸로잡고 머리위로 세워서
오리걸음으로 눈물고개 올라갔던것이 제일힘들었습니다.
훈련시는 M16으로 훈련받았지만 눈물고개 올라갈때는 일부러 무거운 M1으로 올라가라 하더군요.
40여년전 막군대에서도 안그랬는데 2024년도에 이런 어이없는 황당한 죽음이 있어야되겠습니까.
저도 5월에 입대해서 압니다만. 군대는 무조건 덥고 춥고 배고픕니다.
5월이라도 사회는 덜더울지모르지만 군대는 무쟈게 덥습니다.
근데 10일된 훈병한테 완전군장구보에 푸쉬업이라니.
시멘트한푸대가 40kg인데 시멘트한푸대를 등에메고 푸쉬업할수 있을거 같습니까.
사람 체력이 전부다 똑같을수는 없는데요.
군대체질로 바뀌기전 훈병한테 그렇게 했단건 이건 느그들 죽어봐라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중대장인데 남자들 언제 조져보냐 아니었을까?
만약 자대간다면 자대병사들한테는 안되고 훈병이 만만하니까 그런것은 아니었을까?
이번사건의 그여중대장은 제가 겪었던 그옛날 그중대장님처럼
각소대를 돌며 중대원들 불편사항을 한번이라도 물어봤을까?
자기도 이론적으로 공부를 해봐서 인간의 체력한계를 알텐데 군인정신은 뭔 개좆같은 군인정신.
40여년전그때 준위님은 아버지같았고, 중대장님은 큰형님같았고 조교들은 바로위 형님같았습니다.
직장이던 군대든 어떤단체든간에 바로위 상사를 잘만나야 된다는건 변함없는 진리인거 같습니다.
자식을 먼저보낸 그부모 심정은 어떨까 안봐도 제가슴이 턱~막힙니다.
사망한 병사의 명복을 빕니다.
더운 날씨속 각개전투훈련에 목이 말라 갈증나는 훈련병들에게 온수통에 든 온수를 군대 스텐레스컵에 따라 마시게 하더군요..소금 한줌 같이 안먹으면 그 뜨거운 물마저도 못먹게 하고....
알고 보니 시원한 물은 감당이 안되게 마셔서 조달이 안되고..물만 마시면 탈수가 되니 소금과 같이 먹이더군요....더운 뙤약볕에...그 뜨거운 물도 갈증나니 후후 불면서 먹게 되더군요...
그게 벌써 30년전이군요...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훈련병의 명복을 빌며...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시간에도 군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없는 우리 군장병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대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더운 날씨속 각개전투훈련에 목이 말라 갈증나는 훈련병들에게 온수통에 든 온수를 군대 스텐레스컵에 따라 마시게 하더군요..소금 한줌 같이 안먹으면 그 뜨거운 물마저도 못먹게 하고....
알고 보니 시원한 물은 감당이 안되게 마셔서 조달이 안되고..물만 마시면 탈수가 되니 소금과 같이 먹이더군요....더운 뙤약볕에...그 뜨거운 물도 갈증나니 후후 불면서 먹게 되더군요...
그게 벌써 30년전이군요...세월이 참 빠릅니다..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훈련병의 명복을 빌며...가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시간에도 군에서 국토방위에 여념없는 우리 군장병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대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배추파동으로 양배추 감치에 똥국먹고 버티다가..
자대 말년 96년 연천 집중호우로 21명 집단매몰사망사고 ..
신교대 근무병2명 급류 사고 부사관사고
말도못하고 안타까운사고들..
그냥
그대들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네요..
산사태가 막사를 덮친 사고였었지요.
아들만 둘이고 장남이었는데
그때 형님 통곡하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네요.
형님도 이젠 돌아가시고 안계시네요.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
산사태가 났는데
야전삽으로 토사 제거했네요
진실은 많으나 안타까운건
초기 대응만 했어도
줄일수 있었던 사고..
그후
천재지변이라고
사단장은 군단장으로 진급함
벽제화장터..
따블백에 몇가지안되는 유품
가져다 드렸네요..
트라우마로 퇴직후도
고생하더라고요
모두 피해자입니다
눈으로 보고 듣는것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배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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