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6월 11일(음력 1871년 4월24일)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신미양요를 일으킨 미국은 어재연 장군이 지키는 광성보를 향해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조선군들은 서양의 총알을 막고자 물에 적신 솜옷을 두껍게 입었지만
한여름 더위에 솜옷이 마르면서 오히려 미군의 포탄에 쉽게 불탔습니다.
광성보 전투의 전사자는 미군 3명, 조선군 350여명.
조선군 사망자 중 무려 100명이 익사였다는 것은
솜옷에 붙이 붙어 뜨거우니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인데....
미군 슐레이 대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용감무쌍하게 싸우는 군인들을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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