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이 공포되었습니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민중의 열망은 두 가지였습니다.
"북한처럼 친일파를 처벌해 달라."
"북한처럼 토지를 나누어 달라."
북한의 토지개혁은 무상몰수 -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고
남한의 농지개혁은 유상매입 - 유상분배를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남한의 농지개혁이 지주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북한의 무상몰수도 너무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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