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자식둘가 그 사람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야구르트 배달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저는
그 사람이 없어져서 좋았습니다,
힘들지언정 마음은 편했고 폭행을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처음 밭일만 하다 야쿠르트 배달을
하는 게 힘이 드셨나 봅니다,
자주 따라 다니며 도와 드렸지만 아무것도
어머니의 힘듦은 모른 채 따라다니며 거들면서
가끔 간식을 사주시는 것에 혹해 있었던 거 같습니다.
2년 형을 선고 받은 거 같습니다. 예전 전과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힘들게 산 거 같습니다.
충분히 자식을 버리고 갈 수도 있었는데
그 모정이 무엇인지 아니면 미련했는지
그 사람이 출소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또 터지고 말더군요
장롱 속에 숨겨놓은 성인물의 테이프를 그 동네 골목대장
연준이라는 사람이 찾아내어 국민학생들이랑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연준이라는 상급생 어머니에게 따졌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들 손이 닫는 곳에 보관한 너희 엄마가
잘못이다고 해서 동네가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배달을 다 하시지도 못한 채 집으로 달려와
동네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긁고는 빌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울면서 말이줘
참 아이러니하게 몇 년 후에 그 연준이 작은아버지 아들이
유치원생 정도 되는 애를 추행해서 두들겨 맞았고
얼마 후에는 여고생을 성폭행해서 구속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은 깨끗한 척 했으면서 정작 자신들의 자식은
단속하지 못한 거였습니다.
연준이 엄마는 동내사람들의 모임돈 몇억을 들고 야반도주 해버렸습니다.
뭐 붙은 개가 뭐 붙은 개들 놀리듯이 말입니다.
몇 년이 흐른 후 그 사람은 출소했습니다.
어머니의 상황을 보고 판사님이 안쓰러웠던지 생각보다
빨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게 운전이라 이번에는 버스 기사를 하더라고요
그 당시는 뭐 범죄자들이라도 막 채용을 하는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조용하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변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흘러 제가 국민학교5학년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그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전날 밤에도 술에 취해서 마지막으로 작은이모를
만나고 싶다고 개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안좋은 기억들이 앞으로는 조금씩 해소되시길 바랍니다.
체불임금도 꼭 받으시고, 노동부에 실업급여, 동사무소에 긴급생계비 최장으로 신청하시고, 수급자도 신청하세요.
살아가다 보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올겁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현재도 다른것 보다 우울증이라는 병떄문에 많이 힘이 든 상황입니다.
생계비 지원을 받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실업급여는 증상이 좋아지면은 연장신청했기에 다시 신청해서 받을수 있습니다,
임금 체불은..... 돈많은 골프장에서 인줄려는 것인지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일을 뭐같이 안했거나 해서
그런거 같습니다 체불임금만 받는다면....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힘이드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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