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만 살지 않았다면은 잘사는 것이니
잘살고 있겠다고 생각을 할게.
군종병 형 의무병 염병장형 고마웠어요.
전역하고 복학을 했습니다,
복학생이 워낙 많으니 복학생 반을 따로 만들 정도였습니다,
이때는 저도 개차반이었습니다,
사춘기가 그제야 온 거 같습니다,
교수님이 뭐라고 하면은 달려들고 화내고
교실을 벗어나서 오락실에 가서 펌프나 하고
참 그때 그래도 같이 있어 준 친구는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도 고마웠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돈가스 먹던 날 실수로 흘리고 나서는
치우지도 않고 그 뒤론 한 번도 식당을 가지 않은 나
그 피 저주 같은 그피 자식이 부모를 닮는다는 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력성만 없었을 뿐이지 고집도 있었으며
살살 사람을 간 보기도 잘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억눌렸던 것에서 해방되고 부턴
개차반이 되어 갔습니다,
졸업을 180일 대강 다니고 학사 자격을 땄습니다,
하지만 배운 것도 없습니다,
그때부터도 싹수가 노랬습니다,
일해서 돈 버는 것보다 쉬는 날이 많았습니다,
모아 놓은 돈이 떨어지면 그제야 노가다라도 가서
돈을 벌었습니다,
일은 진짜 소같이 했습니다,
다만 그에 비해 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유흥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즐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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