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L.A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들의 무죄 판결에 대한 항의 운동으로 시작된 시위는 순식간에 무정부 상태로 변했다.
시위는 과격해졌으며 지나가는 차량을 세워 흑인과 중동계가 아닌 백인과 다른 인종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화, 살인, 약탈이 만연했고 인종에 관계없이 이 지역의 상황은 급속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 하기 전의 한국은 불안했던 정치와 낙후된 환경의 모습을
갖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 매우 달랐습니다.
아메리카드림의 꿈을 안고 미국을 찾았던 많은 한국인들은 일할기회는 물론 돈도 부족했기 때문에
흑인지역을 떠나고 싶어하는 백인 소유주들로부터 상점을 싼가격에 인수했습니다
이는 매장의 비용이 저렴하지만 범죄율이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것을 의미했습니다.
한인들이 하는 가게들은 흑인들을 상대로 가발,잡화,식료품점 등 캐쉬장사가 많았고
우리 부모세대가 그러하듯 악착같이 힘들게 돈을벌어 아이들은 아이비리그에 보란듯이
보내는 모습은 흑인들은 물론 백인들까지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습니다
흑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 돈을 벌고 ,흑인들의 위치와 일자리를 빼앗아
결국 성공하여 백인들과 같이 어울리는 모습에 질투와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거죠
폭동 발생 수시간이 지나도록 LAPD 경찰의 대처는 미흡했으며 약탈 방화 등
폭동 규모가 점차 커지자 톰 브래들리 시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피트 윌슨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 방위군 2,000명에게 출동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과 주 방위군은 백인거주지역과 베버리힐즈 등 부촌의 경계와 방어에만 배치되었으며
한인타운에는 전혀 공권력이 투입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백인경찰들의 흑인폭행과 무죄판결로 벌어진 폭동이었습니다만
미언론은 백인과 흑인의 갈등을 덮기위한 것인지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기 위한
시도를 하는 이상한 시그널이 보여집니다
폭동일어나기 1년전 두순자 사건을 들춰내고 편파적인 보도를 하면서 많은 흑인들이
한인거주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흑인사회에 영향력이 크던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서 두순자사건을 여러차례
언급하며 한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여러번 했었죠
( 두순자 사건은 중년의 한인마켓을 운영하던 두순자씨가 흑인 십대가 오렌지쥬스를
훔치는 것으로 오해해 싸움이 붙어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입니다}
물론 흑인폭동이후 미국의 언론보도 행위에대한 반성과 함께 그와 같은행위가 개선되지만
그때의 인터뷰를 보면 백인은 사라지고 교묘히 흑인과 한인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모습도 보여집니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피땀으로 이룩해놓은 모든것이 약탈당하고 불타올랐습니다
한인상점들의 피해가 점차 커지자 LA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는 대피방송이 아닌 방위방송으로 바뀌고
한인타운을 우리손으로 지키자고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은 제보를 받고 지원을 요청하는 지휘소가 되었으며 방송을 듣고 공부하던 학생부터 월남전을 참전했던
예비역까지 한국인의 피를 가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인타운을 지키려 모이고 있었습니다.
군대를 한번씩 경험하고 월남전 등 전쟁터를 경험한 한국인들이 자신의 가게와 동포를 지키고자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방송사의 헬기가 촬영한 영상을 보고 전문가가 언급된 말중에
"한인타운은 엉성하게 열린것 같지만 실제론 함정과 같다. 들어가면 죽는다. "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파이어 베이스라는 중대전술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진지구성으로 우리 청룡부대
1개중대가 무려 2000명이상의 베트남 1개연대를 개박살낸 전설의 진지 전술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곳이 교차사격이 가능한 진지구성, 한곳이 무너지더라도 바로 뒤로 빠질수 있는 교통로의 확보와
무너져 빠진곳도 빠진 순간부터 다시 쫍아진 진격로에 대고 아군은 교차사격할수 있도록 화기를 배치 시켰던
이 전술을 고대로 LA폭동시 한국인들이 올라갔던 쇼핑몰도 위 진지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폭도들이 편히 들어올수 있는 큰 길을 하나 만들어두고 옥상과 바리게이트 교차사격이 가능하게 하여
점령하긴 어렵고 후퇴하기는 쉬우며 길은 뚫려있는데 진입을 시도하면 옥상과 바리게이트에서 사격하여
도저히 뚫을수 없는 진지였습니다
폭도들에게 한인타운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나고 미국정부가 군대와 주 방위군을
추가 파견함으로 폭동을 겨우 끝낼수 있었습니다만 앞날이 창창했던 학생이 오인사격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고 2300개의 한국상점이 약탈당하거나 불에 타버려 전체피해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미국의 다민족 사회에서 한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훨씬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지붕위에 한국인들은 긴밀한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모여 동족을 지킬수 있는지 증명했습니다.
The Rooftop Koreans 밈과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미국에서 주류가 된적은 제법 많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미국에서 들불처럼 번져 Craigslist 게시물이 만들어졌고 다양한 포럼에
주제로 만들어졌으며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살해에 대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을때도
레딧에 사진과 이야기들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한국커뮤니티에서 만든것이 아닙니다
옥상위에 한국인 밈은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사용되어왔으며 " 옥상위에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취하라"
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거의다 군대를 다녀온다는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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